탄압 속에서 살아남은 무속인
  글쓴이 : 예감사주     날짜 : 12-03-27 21:34     조회 : 11474     추천 : 0     트랙백 주소

탄압 속에서 살아남은 무속인

흔히들 말하길 인류의 역사와 무속의 역사는 같다고 한다.
수만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우리의 역사 속에서 무속의 역사를 ......

조선조 성리학자들의 탄압속에 살아남은 무속
 무속은 조선 사회가 지탱하는데 없어서는 안되는 종교임에도 불구하고 조선의 성리학자들은 부단히도 무속을 탄압했다.

성리학의 입장에서 보면 무교는 요사스러운 가르침 혹은 음사(淫事)로 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성리학이라는 학문은 이(理) 혹은 원리를 가장 중요시 하는 학문이다.
‘이’라닌 것은 ‘情’과 상치되는 것이다. 성리학자들의 목표는 한마디로 표현할 때 보통 “기질지성을 누르고 본연지성을 회복하는 것”이라고 말 할 수 있다.
이때 말하는 기질지성은 바로 인간의 감정인 칠정(七情)을 말하고 본연지성이란 인간 본래의 도덕심인 사단(四端)을 말한다.

이러한 성리학자의 입장에서 보면 무교의 모든 것이 못마땅할 게 틀림없다. 무교의 의례라는 게 감정을 앞세우고 성리학자들이  가장꺼리는 시끄러운 음악에 남녀가 함께 추는 춤, 복만 비는 행위가 못마땅 했을 것이다.

 조선조에 무속이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은 유교(학)이 관장 할 수 없는 삶의 부분이 그다지 넓지 못했던 사정도 작용했던 것 같다.

특히 인간의 죽음 부분으로 가면 유교가 담당할 수 있는 범위는 작아진다.

인간의 죽음이라는 삶의 국면에서 유교가 주로 담당하는 분야는 성년이 되어 자식을 두고 정상적으로 죽은 사람의 죽음이다. 그리고 가부장제를 중심으로 하는 유교는 남성을 중심으로 강종했다.
그러니 성년이 되지 않은 채로 죽던가 결혼도 못하고 죽은 어린 사람들에 대해서는 유교 체제에서 거의 관심을 두지 않았다. 유교의 제사는 후사가 있거나 나이가 많은 사람만이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가령 아들이나 딸이 어려서 죽었다고 하자. 그 나들이나 딸을 제사상에 모셔 놓고 부모들이 절을 한다는 것은 유교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이런 일은 굿에서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게다가 전통 사회에서는 결혼을 하지 못하고 죽은 영혼을 매우 위험하게 생각한다.

한을 품고 죽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한을 풀어 줘야 하는데 유교에서는 이런 영혼의 한을 어떻게 풀어 줄지에 대해서는 어떤 방도도 없었고 관심도 없었다.

 이런 부분을 무속은 담당하기 때문에 무속인 조선의 탄압에도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이다.

또하나 유교의 제례는 남성 중심으로 운용되었다. 제사는 말할 것도 없고 상례에서도 유교는 철저하게 남성만을 강조하고 있다.

가령 여자가 제사드릴 수 있는 대상은 남편의 조상들 뿐이지 자기 친정의 조상들은 어쩔 수 없이 제외된다.

이것은 상레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여자가 봉사해야 하는 장례식은 남편 조상의 장례이지 자기 부모의 장례가 될 수는 없다.

 물론 자기 부모의 장례에 참가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 경우에도 자신이 주도해서 부모의 장례식을 거행할 수는 없다.
그것은 남자 형제들이 담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무속은 이런 여성들의 문제를 적절하게 해결해주고 있다.

 자신들의 친정 부모를 위해서 오구굿이란 형식을 취해 죽은 부모의 한을 풀고 편안하게 저승으로 보내드리는 의례이다.
 아울러 어린 자손은 죽음에서도 그들을 좋은 곳으로 천도해주는 진오기 굿이 있으며 자손이 없는 사람들은 생전에 자신을 위한 굿을 할 수 있는것도 타 종교에서는 찾을 수 없는 것이다.   

출처 삼국유사연구원

http://blog.daum.net/samgukyusa/118093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