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신도
  글쓴이 : 예감사주     날짜 : 13-08-25 12:07     조회 : 4938     추천 : 0     트랙백 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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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 안에는 부처를 모신 법당 이외에도 여러 건물이 있다. 그중 산신각은 산신령을 모셔놓은 곳이다. 이 산신각은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것으로 우리 고유의 토속신이 불교에 수용된 것이다. 우리나라는 국토의 70%가 산지이므로 예로부터 산에 대한 신앙이 깊었다. 나라를 열기 위하여 환웅이 처음 내려온 곳도 태백산이라는 산이었으며, 단군은 은퇴 후 산에 들어가 산신령이 되었다고 한다. 이외에도 가야의 김수로왕이 구지봉에서 강천하였다고 전해지는 등 역사적으로 보면 왕조의 시작이 산과 관련된 경우가 많았다. 이런 까닭으로 산신은 예로부터 많이 믿어졌으며, 산신에 대한 경의는 어느 시대나 계속되었다.

신라는 삼산오악에 각기 대사(大祀)와 중사(中祀)를 올렸는데, 삼산(三山)은 나력산·골화산·혈례산을 이르고, 오악은 토함산·지리산·계룡산·태백산·부악산을 이른다. 또 상악산·설악산·화악산·감악산 등 24산에는 소사를 올렸다고 한다. 이러한 전통은 고려와 조선에까지 이어진다. 고려시대에는 재변이나 위기가 있을 때마다 오악명산에 빌었으며, 국가의 중요 행사가 있을 때도 산에 제사를 지내곤 하였다. 조선시대에도 오악과 오진에 제사를 올렸다고 한다. 여기에서 오악은 금강산(동)·지리산(남)·삼각산(중)·묘향산(서)·오대산(북)을 이르며, 오진은 오대산(동)·속리산(남)·백악산(중)·구월산(서)·장백산(북)을 말한다.

민간에서도 전국 어느 산에나 산신을 모신 산신당을 두고 소원을 빌거나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였다. 산신제가 동제로 발전되었으며, 토속신들을 포용하는 불교에 자연스럽게 접목되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조선 중기 이후부터는 사찰 내에 산신각을 조성하기에 이르렀다. 산신은 대개 백발 노인으로 등장하고 영물로 알려진 호랑이와 함께 표현되는 경우가 흔하다. 예로부터 우리의 산에는 호랑이가 많았으므로 자연스럽게 함께 표현된 것으로 보인다. 때로는 호랑이 자체가 산신령으로 여겨지기도 하여 『후한서』동이전에는 우리의 옛 조상들이 “범에게 제사를 지내고 신으로 섬겼다”는 기록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산신도 (한국의 박물관, 1999.5.1, 문예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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